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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이렇게 살아갈래요
  • 입상자명 : 박경리
  • 입상회차 : 17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산이 하나 있다. 이 근처에 있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도 소풍을 하러 자주 가는 곳이고, 아이들은 산 입구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나이 드신 분들은 길을 따라 등산을 하러 다니는 산이다. 사람들은 그 산을 아주 간단하게 ‘뒷산’이라고만 부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산 앞쪽에 있는 아파트 이름을 따 ‘미도 뒷산’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파트인 미도 아파트는 주민들의 차가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만든 도로를 제외하면 굉장히 자연과 가까이 있는 아파트였다. 큰 놀이터와 가까운 상가 뒤로 나가면 등나무와 칡과 같은 덩굴식물들이 자라 있는 나무로 된 쉼터가 있었다. 그리고 놀이터 앞에는 오래된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자라 있었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목을 앞으로 뺀 것처럼 나무기둥을 뻗은 그 나무는 조금 키가 큰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 친근한 사이였다. 바로 그 나무 앞에서 수영장을 가는 셔틀버스가 섰는데,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쪽 팔에는 수영 가방을 걸치고 샌들을 신은 발로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 나무 위에 앉아 나뭇잎들이 만드는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그 때 내 키로는 볼 수 없었던 더 높은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뒷산을 다니면서 불렀던 동요 ‘이렇게 살아갈래요’를 불렀다. ‘무겁게 앉아 멀리 바라보고 푸르게 살아가래요’가 산처럼 사는 것이라고 동요는 이야기했었다. 창문에서 무엇인가를 던지면 뒷산 중턱에 떨어질 정도로 뒷산과 가까운 동에서는 뒤편에 화단을 만들어 딸기, 나팔꽃, 칡 같은 것을 키웠다. 칡덩굴이 자라 아파트 벽을 타고 8층 높이까지 간 적도 있었다. 일요일마다 모으던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뒤편으로 나가면 그 화단의 바닥에 엎드려 피어 있는 하얀 딸기 꽃을 보느라 옆에 모아 놓은 쓰레기들이 무심해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봄에는 벛나무에서 벛꽃이 피어 떨어질 때가 다 되면 아스팔트 도로가 하얗게 눈이 쌓인 것처럼 변했고, 가을에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잎들이 노란 빛을 칠했다.
무엇보다 ‘뒷산’은 우리 아파트가 더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303동 뒤에 있던 작은 철계단은 흙을 덜어내지 않고도 뒷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가장 좋은 길이었다.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흙이 다져져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도 있었다. 뒷산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은 것 빼면 맨발로 흙길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산이었다. 실제로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에 한 번 해보겠다며 산 한 바퀴를 손에 양말과 신발을 든 채로 맨발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발에 개미가 밟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때 내 발에는 사람들이 자주 버리는 종이조각 같은 쓰레기 하나 없었고 그저 불그스름한 흙과 지푸라기 몇 개만 묻어 있었다. 산에는 인공적으로 식물들을 심은 아파트 단지보다 훨씬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구절초 군락도 있었고, 가을에 붉게 얼굴을 붉히는 단풍나무도 많아서 가을에 아파트에서 뒷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붉게 보이기도 하였다. 식물만큼 동물들도 다양했는데, 언젠가 평소처럼 뒷산에 놀러 갔다가 꽁지깃이 긴 수컷 꿩을 보았던 것은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머리는 청둥오리처럼 푸른 색이었고 노란색에 갈색 줄무늬가 있던 꽁지깃은 내 두 팔을 쫙 펼친 것만큼 길었다. 꿩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조용히 보고 있다가 수풀 사이로 숨었다. 참나무에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들이 나뭇진을 가지고 밤마다 싸움을 벌였고,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지 버려진 애완동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에 검은 점이 있던 토끼들과 흰 바탕에 갈색 줄무늬가 있던 고양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누에다리가 지어졌다. 서래마을에 몽마르트 공원이 새로 바뀌면서 그 공원과 ‘서리풀공원’이라고 이름붙인 뒷산을 잇겠다는 이유였다. 누에다리가 지어지고, 누에다리까지 가는 길을 새로 만들었다. 그때 산등성이에 있던 나무들이 베어져서 마치 장작을 쌓아 놓듯 가지런한 삼각형으로 쌓여 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람들은 흙 위에 나무 계단을 세우고 못을 박고 그 흙을 다졌다. 그리고 서리풀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몽마르트 공원처럼 운동기구를 새로 바꾸고 나무로 된 정자도 두 군데 더 지었다. 미도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뒷산을 통해 누에다리를 건너 몽마르트 공원에 쉽게 갈 수 있게 만들려고 새로운 길을 또 냈다. 작은 철계단은 보통 국립공원에 설치된 것 같은 큰 계단으로 바뀌었다. 산책로라는 이름을 붙인 길에는 야생동물이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철조망을 세웠고, 산 속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식당이 딸린 테니스장도 지었다. 나무에는 이곳을 다녀갔다는 동호회 사람들의 리본이 걸렸다. 운동기구 옆에 설치된 정자 주위에는 먹고 남은 도시락 포장지와 과일이 보였다. 나는 그 이후로 뒷산에서 다시는 토끼나 꿩을 보지 못했다.
뒷산이 바뀌기 전에 우리 아파트에도 변화가 있었다. 내가 수영장 버스를 기다리며 올라탔던 나무는 베어졌고 그 자리에는 흰색 페인트로 주차 공간이 표시되었다. 차 두 대가 새로 자리를 얻었다. 놀이터 뒤에 있던 쉼터에는 모기, 파리와 같은 날벌레들이 너무나 많다. 아파트 뒤에 있던 딸기 덩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파트를 타고 오르던 칡도 잘려 나갔다. 그 자리에도 차가 들어섰다. 그리고 흙이 있던 화단에는 어느새 버려진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지나면서 나도 자랐다. 나는 더 이상 산에 들어가 놀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여름에 산보다는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았고, 어른들은 그런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하였다. 산에 오랜만에 갔을 때는 너무나 습하고 더웠기 때문에 휴대용 선풍기를 틀었다. 그렇게 산도 바뀌고, 아파트도 바뀌고, 나도 바뀌었다.
그러다 이른 아침 운동을 하러 4년 만에 뒷산에 다시 가게 되었다. 누에다리가 지어지던 그 때와 산의 모습은 똑같았다. 운동기구, 정자, 그리고 계단을 이루는 나무판자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누에다리 밑에 있는 대로에는 차들이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많이 달렸다.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이른 아침의 뒷산 공기는 차가웠다. 바깥은 습하더라도 덜 습했고, 상대적으로 온도도 낮았고, 나무 그늘이 많아 지나다니면서 햇빛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연 냄새도 나는 것 같았고, 나무 그늘도 별로 없었다.
그 속에 참나리꽃이 피어 있었다. 여전히 줄기 옆 잎사귀 언저리에는 검은 구슬처럼 생긴 주아를 매달고 암술과 수술을 내놓은 채 주홍빛 꽃잎을 내놓고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려다가 그 꽃을 보았고 걸음을 멈춰 섰다. 한 송이만이 있던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여러 송이가 있었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보였다. 바로 옆에 계단이 시작되는 나무에는 동호인들이 매어 놓은 주홍색 리본이 있었다. 하지만 꽃은 색소를 입힌 그 리본을 비웃듯이 리본보다 더 주홍색인 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내가 이대로 발걸음을 떼어 계단을 오르고, 그리고 그 계단을 내려가고, 이 산에서 내려갈 때 운동기구들은 그대로 있겠지만 참나리꽃은 변했다. 산에 있던 식물들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에 의해서 한때 쫓겨나기도 하였지만 그것들을 이기고 다시 자라났다. 계단을 쭉 타고 누에다리를 건너 몽마르트 공원에 가서 싹 닦인 평평한 공원을 걷고 아침 운동을 하러 몽마르트 공원에 갔다 왔다는 사진을 찍는 것이 편하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놀았던 뒷산에서는 도감을 뒤져도 찾기 힘들 동물들과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아무리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흙을 다지고 길을 내어도 살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하여 산을 만들 때 산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동물과 식물들은 산이 당한 피해만큼 강한 생명력으로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또 꾸려 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자연을 흉내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말이다. 무겁게 앉아서 멀리 바라본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산을 편의도구 쯤으로 전락시켰을 때 그 자리를 지키면서 바뀌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바뀌는 가치를을 이야기하면서 먼 미래를 바라본다.
언젠가 뒷산에서 다시 한 번 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렸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꾸었던 꿈들을 만들어 준 장소인 커다란 느티나무가 다시 생겨났으면 좋겠다. 나도 산처럼 사람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생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처럼, 나도 산처럼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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