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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고로쇠나무의 눈물
  • 입상자명 : 변재영
  • 입상회차 : 18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망백(望百)을 바라보는 나는 지리산 반야봉 계곡에 살고 있는 ‘고로쇠나무’다. 단풍나무 가문이지만 아기단풍 같은 선홍빛을 갖지 못해 단풍의 반열에는 이름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이롭게 한다는 체액을 가졌다. 이뇨와 골절, 위장에 효험이 있다는 선약을 지녔으니 사람들에게 후한 대접이라도 받는 줄 안다면 오산이다. 애물단지 같은 ‘상아’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 코끼리 신세라고 하면 과언일까.
‘영원한 행복’이 우리의 가훈(꽃말)이다, 조상들은 행복했다. 적어도 무명시절까지는 말이다. 본디 우리 고로쇠는 이기적안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피해 높은 산에 은둔하여 살아왔다. 달빛으로 어둠을 밝히고 박달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머루넝쿨을 불러 우리끼리 대작하며 풍류를 읊었다. 계곡물은 노래하고 난봉꾼 바람은 변덕쟁이 구름과 어울려 춤추며 한평생을 유유자적 살았으니 선계가 부러웠겠는가.
이런 우리가 고난의 삶을 살게 된 것은 도선 국사와의 악연 때문이다. 고승의 굳어진 무릎을 우리의 체액으로 고친 것이 실수였다. 대사가 골리수(骨利樹)라는 세례명만 남기지 않았어도……. 그 이름값을 하느라고 지금 우리 고로쇠나무는 뼈대조차 망가지고 있다. 몸보신에 목을 매는 인간들이 가만 두겠는가. 악랄한 흡혈귀로 둔갑한 인간은 단지 몸에 이롭다는 이유로 남의 심장에 구멍을 숭숭 뚫어 빨대를 꼽고는 피를 빨아댄다. 더욱 끔찍한 건 뼈마디만 쑤시면 병원은 찾지 않고 우리의 수피와 잎사귀, 그리고 뿌리까지 캐서 가마솥에 넣고는 푹푹 삶아 즙을 짜서 마신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행동인가. 뻔뻔한 인간은 천년동안이나 우리의 피를 수탈하면서도 아무런 고마움도 미안함도 갖지 않는다.
약아빠진 인간들의 횡포는 먹고살기가 편할수록 극성이다. 칼로 긁고 도끼로 찍는 건 옛말이다. 이제는 아예 엔진을 등에 짊어지고 전동드릴로 가슴팍, 허벅지, 무릎관절하며 피가 나올 때까지 마구 뚫는다. 내 몸이 아니니 고통은 알바가 아니다. 물론 성목에 한하여 많게는 ‘3구멍만 뚫어라’는 나라법이 있지만 산중에서 통할 리 만무하다. 그 법 또한 남을 위해 피한방울 나누어 준 적 없는 인간들이 제멋대로 만든 잣대가 아니던가. 상처는 구멍만이 아니다. 채혈호스를 고정시키기 위해 가슴팍에 쇠못을 박고 철사로 옭아맨다. 그 올가미가 살을 파고들어 명산마다 고사한 동료들의 시체가 검은 뼈로 서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죽음인가.
문어발처럼 링거 줄이 얽인 골짜기는 거대한 중환자실을 방불케 한다. 병든 나무를 고치는 생명의 줄이 아니라 인간 흡혈귀의 빨대다. 할아버지나무부터 손자나무까지 한 가족을 묶어 쥐어짠 피는 드럼통에 모아져 인터넷이나 백화점, 대형마트에서 라벨까지 붙이고 버젓이 팔리고 있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하늘이 내린 천년의 생명수!’라는 현수막을 내 걸고 축제까지 벌인다. 목숨을 빼앗는 일을 두고 축제라니 말이 되는가. 신이 난 TV방송은 한술 더 떤다. 단물에 불과한 수액을 만병통치약인양 부추기고 그 은둔현장을 낱낱이 까발린다.
이제 우리 고로쇠나무가 온전하게 살아갈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헌혈 후 피가 더 맑아지듯 수액을 넘치게 나눠줌으로써 나무가 더욱 튼튼해진다.”는 나무 백정의 궤변에 억장이 무너진다. 요즘 인간세상의 병원에선 피가 모자라 수술을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거리의 헌혈차는 텅텅 비어 기름 값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런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신선한 피는 배터지게 마시면서도 너희의 그 혼탁한 붉은 피가 그리도 아까우냐?”고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어 이리도 못살게 피를 빨아대는지 모르겠다. 죽을병을 고친다면 수액쯤이야 무엇이 아까워 주지 못하랴.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게 귀하고, 약초가 의약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몸에 좋다면 코브라 피에 아기 탯줄까지 먹어치우는 게 인간이다. 수액에 대한 탐욕 역시 에누리가 없다. “고로쇠수액은 즉석에서 마셔야 효험이 있다”나 그래서 우리의 발치에 텐트를 치고 턱관절이 아프도록 오징어를 씹어대며 밤새 말(斗)들이로 마시는 인간도 있다.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빨대를 꼽고 피를 빠는 인간 드라큘라와 무엇이 다르랴.
우리의 앙숙은 인간만이 아니다. 고로쇠수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반달곰이라는 놈도 있다. 힘이 장사인 짐승이 아니더냐. 한 놈만 나타났다하면 우리 고로쇠나무는 억센 발톱에 살이 터지고 뿌리까지 뽑혀 주변은 온통 쑥대밭으로 변하고 만다. 10여 년 전부터 ‘반달곰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인간들이 사육하여 방사한 놈들이다. 따지고 보면 무지막지한 곰보다 우리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간이 더 괘심하지 않는가.
그래도 천만다행이라면 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봄 한 철 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사철 내내 수액을 빤다면 우리 종족이 지금껏 이렇게 생존해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젠 잔인한 봄이 두렵다. 긴 가뭄에 골수까지 강탈당한 우리 고로쇠나무는 유월의 눈부신 햇살에도 더 이상 짙푸름을 자랑하지 못한다. 그래도 놀놀한 잎사귀 몇 개 매달고 버티는 것은 고로쇠수액채취를 금하자는 녹색천사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고로쇠야! 조금만 참으렴. 너의 눈물을 닦아줄 날이 곧 올 거야”
계곡을 훑어온 시원한 골바람 한 자락이 살짝 귀띔을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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