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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굿밭
  • 입상자명 : 정경용
  • 입상회차 : 18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할머니에게 대물림 받은 굿밭이었다. 봄부터 가을이 다 지도록 꽃이 무리지어 나풀거리는 꽃동산, 잡목이 아무렇게나 어울려도 바야흐로 아름다운 동산 숲속에 뙈기밭보다 조금 큰 우묵한 밭이었다.
어머니는 굿밭에 녹두를 심으며 말씀하셨다. ‘굿밭 같은 사람을 만나라’고 빛톨 같은 곡식을 심으면 가뭄에 타들어 가지 않고 장마의 습기에도 무솔지 않으며 바람은 언저리를 에돌아 나가는 굿밭에 삼대의 내력을 심었다.

어머니가 해마다 심은 것은 녹두만은 아니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 쑥쑥 자라는 그리움 툭! 분질러 빛톨 같은 녹두알과 함께 굿밭에 심었다.
자귀나무 온몸으로 서성이는 밭둑 아래 산비둘기 어둠을 쪼아 먼동을 틔우고 이슬에 부리를 닦으며 씨를 솎아 먹었다.
막 촉이 돋는 어머니의 기대가 긴장하고 있었지만 허수아비 허술한 것 같아도 남길 것은 지킨다. 반드레 싹이 나서 밭이 어우러졌다.
녹두가 웃자라서 쓰러질 것을 염려하여 하늘은 오뉴월 뙤약볕에 풀무불을 지펴 초록줄기를 담금질 했다.
눈매 서글서글한 흰구름이 차양막이 되어주고 은빛 바퀴로 앞산에서 달려온 바람이 붉은 우편낭에서 꽃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취업이 되어 고향을 등지고 도시를 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굿밭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꿩꿩 장끼와 까투리 부부, 새끼를 친 숲에서 꺼벙이 떼 몰고 내려와 밭을 헤집었다. 덜자란 녹두대궁을 쪼아대며 내닫는 여린 발자국을 호미농법으로 다독이며 어머니는 꿩가족을 쫓지 않았다. 쪼르르 아장아장거리는 앞태를 눈동자 안에 넣고 한참을 음미하였다.

나는 주말 양봉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오골거리는 생명에 감탄하였다. 저 많은 가족과 더불어 살고 싶었다. 설명회가 거듭하며 나의 간절함을 읽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담소하였다.
‘굿밭 같은 사람’ 나는 번개 맞은 것처럼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었다.
굿밭 같은 사람에게 굿밭 이야기를 하였다.
양봉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그 사람은 벌통을 놓을 자리라고 좋아하였다.
나는 뒷전이고 굿밭에만 관심을 쏟는 그에게 짐짓 새침한 척 하였다. 그 사람은 나를 꼭 껴안으며 사랑을 고백하였다.

숲속을 가르는 바람을 타고 고라니가 겅중 겅중 초록별을 찍으며 녹두 잎을 뜯어 먹어도 잎 겨드랑이의 꽃방울은 부풀어 올랐다. 추수할 때는 무성한 눅두 대궁보다 고라니가 듬성 듬성 솎아준 대궁의 녹두 꼬투리가 실하여 소출이 더 많았다고, 세상은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집 떠난 식솔들의 기다림으로 어머니는 늙었다.
향이 배틀하게 풍기는 밤나무 꽃이 피면 굿밭에 녹두를 심으며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더운 가슴을 식히기도 하였다.
밭둑의 풀포기 사이에 패랭이꽃이 어른거리고 망초꽃도 어룽어룽 얼비치었다. 애기똥풀꽃이 지천으로 피어 샛노랗게 웃었다. 애기똥을 빨던 시절 어린 것에 잔병치레의 시름을 거더내듯 쇠비름이나 바랭이를 호미 끝으로 찍어냈다.

굿밭 속으로 단비가 여러 번 왔다 갔다.
벌새 같은 녹두꽃이 온밭 가득 나풀거리고 휘파람 새가 두근두근 휘파람을 불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허리를 펴고 너머에 너머까지 내다보았다.
실하게 여문 녹두 꼬투리처럼 단단한 어머니의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다.
자귀나무 아래 묵묵한 기다림이 서성거렸다.

나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굿밭 같은 사람과 벌통을 싣고 꽃동산으로 달렸다.
어머니에 주름진 얼굴의 야윈 웃음이 내 가슴을 문질렀다. 눈물처럼 매달린 칡꽃의 향기가 진동하였다.
나는 동산에 굿밭이 있어 기댈 언덕이 있었다.
벌과 함께 사랑하는 이들과 웅웅거리며 살아갈 요량이다.

땅의 곳간인 굿밭에서 한 가계(家系)가 일어설 수확할 녹두의 행선지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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